엄마와 성당에

13. 삼성산 성지 순례(2021.4.4.일.)

소중맘112 2021. 8. 27. 15:43

2021.4.4.일.

아들 초등학교 입학 후 [빛나는 하루]를
시작했어요.
한 달 미션 완료하면 원하는 것들 중
뽑기를 해서 해주기로 했어요.

아이가 정한 건
장난감 사기 / 놀이공원 가기 / 미술관 가기
외식하기 / 박물관 가기 / 천주교 성지 가기
이렇게 6가지인데 장난감이 나오니 싫다고
한번만 더 뽑게 해달래서 뽑았더니
천주교 성지가 나와서 만족해하여
가깝고 안 가본 삼성산 성지에 가기로 했어요.
일요일에는 다행히 비가 그쳐서 출발했어요.

관악산이다 보니 좀 가파르고
아무래도 순교자들께서 숨어계시려다 보니 그렇겠죠..ㅠ.ㅠ
삼성산 성지 주차장에 주차하고 계곡을 따라 꽤 산길을 올라가면 관악산 둘레길에 세 분의 무덤과 십자가의 길 등이 있습니다.

계곡이 옆이라 조금 미끄럽고 가파르니
운동화나 등산화 신으시고
오르내리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.
묵주기도 하시는 분, 십자가의 길 걸으시는 분도 몇 분 계셨습니다.
둘레길을 조금 더 가면 호압사라
아이가 호압사도 가고 싶어 하였지만
기운이 좀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왔습니다.

[네이버 두산 백과사전]
삼성산(三聖山) 순교 성지

1839년 기해박해 때 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앵베르(한국명 범세형) 주교를 비롯하여 성 모방(한국명 나백다록) 신부와 성 샤스탕(한국명 정아각배)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. 삼성산이라는 명칭은 신라 때의 명승 원효(元曉) ·의상(義湘) ·윤필(尹弼) 등 3명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는데, 1901년에 세 순교자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, 1970년에 사적지로 조성되었다. 1836년 이래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던 모방 신부와 앵베르 주교,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각각 자수하여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은 후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.

이들의 시신은 박 바오로 등 몇몇 신자들에 의하여 거두어져서 노고산(마포구 노고산동)에 안장되었다. 이로부터 4년 뒤인 1843년에 그들의 유해는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과천 땅이던 관악산 한 줄기인 박씨 선산에 안장되었는데, 이곳이 곧 지금의 삼성산이다. 박 바오로는 그 이장 경로는 물론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장소를 아들 박순집(세례명 베드로)에게 자세히 알려 주었으며, 박순집은 훗날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수속이 진행되자 이 사실들을 교구에 보고하였다. 1901년 10월 21일에 유해가 다시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으며, 같은 해 11월 2일에는 다시 명동 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지게 되었다.

그 후 대방동 본당 주임 오기선(세례명 요셉) 신부는, 1970년 봄에 최석우(세례명 안드레아) 신부의 자료 고증과 정원진(세례명 루가) 신부의 회고를 토대로 삼성산 무덤 자리를 찾게 되었다. 그런 다음 같은 해 5월 12일 그 자리에 삼성산 순교 성지 기념비를 건립하였으며 김수환 추기경, 노기남 대주교, 그리고 박순집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을 가졌다. 서울대교구에서는 이 일대의 임야 약 1만 6,000평을 확보한 뒤 1981년에 3명의 성인 이름이 새져진 순교비를 추가로 건립하였으며, 1992년에 삼성산 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이 본당에서 사적지를 보살펴 오고 있다.